I am from a non-place and going nowhere.
by Zhivago
이전블로그
Borneo Diary <5>
"저어기로 계속 헤엄치면 베트남도 나오고 타일랜드도 나오고, 저기 봐, 저기는 캄보디아.."

남자아이는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가르치며 열심히 세계지리를 설명한다. 그 모습이 왠지 우스워 여자아이는 계속 깔깔대며 웃기만 한다. 거짓말. 그런게 어딨어. 거짓말이지?

하지만 정말 그럴 것이었다. 이 남중국해를 넘어 끝없이 헤엄치면 멀다고 생각했던 세계도 눈 앞에 보일 것이었다. 그 옛날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바다를 건너고, 무인도에 정착하고 불을 피웠을까. 거기까지 생각하니 여자아이의 웃음이 멈췄다.

그 사람들은 나같은 사람들이었을까? 현재에 만족하지 못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에 사로잡혀 그렇게 생명을 걸고 여행한걸까. 물한방울 없는 사막을 건너고, 험한 정글을 지나 낯선이들과 싸우며 그들이 얻은것은 무엇이었을까.

여자아이는 언젠간 저 바다를 건너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눈시울을 붉힌다.
by Zhivago | 2007/06/28 09:46 | 트랙백 | 덧글(1)
Borneo Diary <4>
바닷가에 놀러간 두 꼬마는 수영은 제쳐두고 물장난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남자아이는 곧 모래바닥에 앉아 게를 잡는다며 어디선가 발견한 코코넛으로 물을 길러 모래구멍을 열심히 막고 여자아이는 아무것도 안보이는 흙탕물에서 스노클링 한답시고 바쁘다.

"한참 물속에 있다가, 해가 지면 그때 집에 가는거야."

물속에서 찰방찰방 하다보니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한다. 여자아이는 하늘이 언제 빨개지는거냐고 자꾸 재촉하고 남자아이는 그런것엔 관심도 없다는 듯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나뭇가지에 걸린 물주머니에서는 조르륵 물이 흘러내린다. 모기에게 물릴까 온몸을 뒤틀며 목욕을 하고는 여자아이는 아쉽다는 듯 한번 더 뒤를 돌아본다.

"저기 봐! 저기!"

모든것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길, 해를 집어삼킨 하늘이 미친듯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여자아이는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를 야자수 너머에 들이댄다. 그러나 아무것도 찍을 수가 없다. 밝은 하늘이 하얗게 보일 뿐이다. 정말 소중한 것은 사진으로도 담아둘 수 없기에 큰 눈을 껌뻑이던 그녀는 곧 체념한다. 하지만 체념은 슬프지 않다. 어른이 되는것이 슬플뿐이다.

백년이고 천년이고 아름다운 노을을 잊지 않게 해주세요..하고 여자아이는 속으로 빌었더랬다.
by Zhivago | 2007/06/11 09:33 | 트랙백 | 덧글(2)
Borneo Diary <3>
하늘이 큰 굉음을 내며 울렸다.

살갗이 떨릴정도의 큰 천둥이 바로 지붕 위에서 내리치면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열대의 폭우는 자연의 무서움을 깨닫게 한다. 천둥소리는 귀가 아플정도로 크고 건물 바닥이 살짝 울릴정도로 깊은 진동을 남긴다.

정글에 있는 나를 상상했다.

이곳보다 10배는 큰 소리들과 두려움에 혼자 앉아있는 나를 떠올렸다. 숨을 곳은 아무도 없고, 하늘은 구멍이 뚫린듯이 쏟아부을 것이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추위에 온몸이 떨리겠지.

쾅-

한줄기 빛과함께 암흑이 찾아왔다. 칠흙같은  어둠속에 누워 나를 노려보는 번쩍거리는 창문을 바라본다. 빛, 그리고 어둠. 이런 비내리는 밤에 나 홀로 바다에 던져졌다면 인간의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본능대로 으르렁대는 하늘과 싸울 수 있을까.

삶의 의미를 찾아 끝도 없이 고민했지만, 결국엔 생존하는 것만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by Zhivago | 2007/06/09 22:43 | floatt. | 트랙백 | 덧글(3)
Borneo Diary <2>
무스는 손을 내저으며 그냥 놔두라는 시늉을 했다.

"후쟌!"

뒷마당에서 고양이 밥을 주는데 작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빨랫줄에는 무스가 널어놓은 빨래들이 보이고 급한 마음에 아무 옷이나 손에 잡았다. 순간 손에 차가운 감촉이 닿는다. 옷은 이미 젖어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무스가 서있다. 아마 괜찮다는 말일거다. 이미 비에 빨래가 한번 젖었으니 굳이 걷을 필요 없다는 뜻일거다. 그렇게 그녀는 돌아섰고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있었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 Let it be. 억지로 손대려고 하지말고 뭐든지 흐르는대로 그냥 놔두는 것.

이층으로 올라오니 굵어진 빗줄기가 하늘을 어지럽힌다. 나는 작은 실바람이라도 잡으려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빗속에도 분명 바람은 존재한다. 고통속에도 기쁨이 있다. 그냥 내버려두자. 며칠이고 몇년이고 놓아두면 다 마르고 말라서 사라질테니.

이곳엔 사시사철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이 있지 않던가.
by Zhivago | 2007/06/03 08:21 | floatt. | 트랙백 | 덧글(4)
Borneo Diary <1>
이곳의 날씨는 단순하다 못해 정직하다.

런던에 꽤 오래 살았는데, 그 곳의 날씨처럼 예측하기 힘든것이 없었다. 변덕스런 여자의 마음처럼 하루에도 12번씩 맑았다 흐렸다했다. 그런데 이곳은 다르다. 진푸른색 산 너머로 먹구름 한 조각이라도 보일라치면 벌써 비가 올것처럼 후덥지근하다.

땡볕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다보면 비님이 오실 채비를 마친다.

조금 후에 비가 쏟아질거라는 걸 알고 집고양이들은 처마 밑 깔개아래 몸을 숨긴다. 비는 그렇게 오래 내리진 않는다. 처음엔 너무단순한 날씨의 반복이 놀랍기도 했다. 덥거나, 비오거나. 그렇게 몇 시간동안의 샤워가 끝나면 다음엔 화려한 노을이 하루의 끝을알린다.


덥다.

후덥지근한 공기 사이로 빗소리가 들리고 수업을 끝마친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각자 제 방으로 들어가 낮잠을 잔다. 겨울잠을 자는 곰이 떠올라서 혼자 피식하고 웃는다. 허나 안타깝게도 나는 환한 낮에는 별로 졸리지 않다.    

런던이나 보르네오섬이나 비가 그렇게 많이 오는데도 우산은 별로 인기가 없다.물론 우산이 필요없는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말이다. 뭐, 산성비도 아닌데 좀 맞으면 어떠랴.

오늘도 나는 기우제를 지내는 심정으로 시원한 비를 기다린다. 
by Zhivago | 2007/05/12 17:47 | floatt. | 트랙백 | 덧글(3)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포토로그
rss

skin by 이글루스